하이브리드, ESS 비즈니스 전환 관련 투자 기대
공정 단위의 프로세스 제공에 집중
`25년 한 해를 바라보는 디스펜싱 시스템 제조업체들의 시선이 어둡다. 설비투자 시장이 각종 악재로 뒤덮인 탓이다. 디스펜서 업체 A사 관계자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가 껴 있는 것 같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거칠만하면 갑자기 어디선가 다시 짙은 안개가 새롭게 나와서 진해지고, 너무 진해서 길이 안 보인다 싶으면 희미해진다. 도통 예상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오랫동안 업계에 종사해 왔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단편적인 게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지난해 디스펜서 업체들은 설비투자 둔화를 몸소 체험했다. 반도체를 포함한 모바일, 가전, 디스플레이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수요가 살아나지 않았다. 많은 업체에서 `24년 SMT용 디스펜서 시장이 `23년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소폭 하락했다고 평가했다.
자동차 전장을 제외한 휴대전화, 가전,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산업계가 투자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산업연구원의 ‘2025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는 “국내 설비투자 부문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경기 상승세 유지와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져 온 부진을 벗어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지만, SMT 업종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생산설비업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올해 설비투자가 약간 개선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해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속도 조절, 자본재 수입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1.5% 늘어났으나, 올해는 글로벌 금융여건 완화, 기업 투자 여력 확대 등으로 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연구원도 2.9%로 전년 대비 증가세 확대를 예측했다. 글로벌 IT 경기 호조에 따른 주요 기업들의 실적 개선과 금리 인하 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긍정적인 전망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국내 디스펜서 제조사 B사 관계자는 “모바일, 가전,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전 산업계에서 디스펜서 문의가 예년에 비해 확연하게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전기차와 EV배터리 시장이 성장하면서 해당 시장이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이 업종의 수요마저 확연하게 낮아지고 있다”며 “시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1분기 상황을 토대로 보면 올해는 힘든 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국내 디스펜서 시장 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 전망은 밝다. 시장조사 전문업체들의 보고서를 종합하면, 모두 시장 확대를 점치고 있다. Persistence Market Research의 ‘산업용 디스펜서 시장: 산업 분석, 규모, 점유율, 성장, 동향 및 예측(2024~2033년)’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용 디스펜서 시장 규모는 `24년 98억3,480만 달러(약 13조8,000억 원)에서 `33년 153억7,240만 달러(약 21조6,000억 원)으로 성장한다. 성장 동인으로 제조 공정의 자동화와 고성능 디스펜서 시스템에 대한 수요 증가를 들었다. 즉, 글로벌 산업용 디스펜서 시장은 제조업의 자동화 도입 증가와 유체 디스펜서 용도의 정밀도에 대한 니즈 확대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더불어 용제 폐기 비용 절감, 생산 효율 향상, 제품 일관성 보장을 원하는 EMS 업체들의 요구가 첨단 디스펜싱 기술 수요를 촉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전자부품의 복잡성 증가, 신뢰성 및 품질 제고를 위한 자동차·항공우주 분야의 활용처 확대, 제어 및 모니터링 강화를 위한 IoT 및 AI의 통합 같은 최첨단 디스펜싱 시스템의 기술 발전이 시장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다만 시장 성장 억제 요인도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높은 초기 투자 비용과 기존 제조 공정에 이러한 시스템을 통합하는 데 따른 복잡성을 걸림돌로 지적했다. 중소기업이 고사양 디스펜싱 시스템 투자를 꺼리는 경향을 시장 확산의 제한요소로 봤다. 이와 더불어, 원자재 가격 변동, 정기적인 유지보수 필요성, 장비 고장으로 인한 가동 중단 가능성도 시장 성장의 부담 요인으로 선정했다.
AI 기술이 디스펜서 시장 확대에 공헌할 것으로 보인다. 설비 내의 AI 기술 접목 및 고도화를 통해 디스펜서의 퍼포먼스가 높아지고, 생산 중심의 성능 구현 등이 가능해져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Precedence Market Research의 보고서에서 특히 ‘AI 기술 확대가 산업용 디스펜서 시장을 이끄는 요인’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생산설비의 AI 기술 내재화는 트렌드가 됐다. 많은 업체가 AI, IoT, 머신러닝, 센서 등 스마트 기술을 설비에 통합해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며 “디스펜서에도 AI 기술을 통합하면서 전반적인 운영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디스펜싱 시스템에 로봇·AI를 접목하면 토출 정밀도와 정확도를 높이고, 프로세스를 간소화해 전반적인 효율성을 높이며 생산 오류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보고서는 “모든 설비와 마찬가지로 디스펜서의 AI 내재화는 꾸준히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자동차 전장, 배터리’ 업종의 투자 움직임에 생산설비 제조업체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 전기차·EV배터리 업종의 설비투자 분위기는 1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 연초 디스펜서 업체들은 공통적으로 전기차, EV배터리 관련 업종의 수요를 크게 기대했다. 실제 생산 현장에서도 전장 관련 임가공 업체의 설비 요청 문의가 늘었고, 납품 건수도 많았다. 전기차용 ECU의 방수·방진·보호 목적의 실링 및 코팅 수요가 높았고, BGA 언더필, 방열 디스펜서, TIM(Thermal Interface Material) 디스펜서 등의 수요가 증가했다. 그러나 현재 투자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지난해 2분기부터 나왔던 투자 축소 및 지연이 하반기에 현실화됐다. 전기차 캐즘 단계 진입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예상보다 더딘 성장을 보였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재당선, EU의 내연기관 판매 유예 등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설비투자 속도가 늦춰졌다.
미국 IRA 폐지 가능성, EU 내연기관 규제 연기 등이 전기차 수요 둔화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트럼프 정부의 IRA 완전 폐지는 어렵다는 관측이 있으나, 친환경차 보조금에 대한 선택적 폐기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EU에서는 중국 전기차의 점유율 확대 우려와 역내 산업 보호를 이유로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 시기를 `35년으로 연기하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런 연유로 완성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차량 비즈니스에 힘을 주고 있다. 캐즘 대응 방안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와 하이브리드(HEV) 차량 라인업을 강화하고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설비 수요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펜서 제조사 C사 관계자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나 용액, 에폭시 등의 용제를 토출하는 공정은 동일하다. 현장에서 원하는 성능이 크게 다르지 않고, 혹시 다르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디스펜서 업체가 높은 제조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대응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결국 자동차 업종의 투자가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전기차 내연기관용 수요가 줄어드는 것을 하이브리드에서 상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분간 디스펜서 시장의 활성화를 이끌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디스펜서 업계에서는 신규 물종 확대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이다. ESS(에너지 저장 장치) 관련 사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전기차 캐즘에 따른 EV배터리 수요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배터리 업체들이 ESS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전용 설비투자 발생을 예상하고 있다. 디스펜싱 솔루션 전문기업 D사 관계자는 “배터리 업체는 전기차용 EV배터리 악재를 ESS로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모든 배터리 업체가 차세대 신사업으로 ESS를 지목했다”며 “이와 관련해 투자가 연초부터 조금씩 나오고 있어서 투자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본다”고 말했다. 그는 “디스펜싱 시스템 제작 입장에서 보면, 요구하는 공정 수준이 많이 높지 않아 대응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단지 해당 공정에 특화된 일부 특수한 사양을 맞추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컨포멀 코팅 수요가 꾸준하게 늘어남에 따라 디스펜서 업체들이 해당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대부분의 업체가 디스펜서와 컨포멀 코팅을 결합한 패키지 또는 토털솔루션 공급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용액 특성에 따른 최적의 솔루션을 구현할 수 있으며, 디스펜서급의 컨포멀 코팅 제어와 MES, 이력 추적 기능 등의 자동화 솔루션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컨포멀 코팅의 공정 사양이 높아지고 있다고 관련 업계는 말한다. 이전과 달리 선택적 코팅 작업을 요청하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코팅 솔루션 전문기업 G사 관계자는 “에어 스프레이를 이용한 대용량의 오버 코팅 형태가 아직도 대다수지만, 특정 영역만 코팅하는 타입의 수요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면서 “모바일 기기에 사용되는 경박단소화된 부품이 전장, 가전용 물품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제조 공정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코팅 프로세스도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거버 데이터에 기반을 둔 정확한 위치의 코팅 성능 요청이 늘었다. 세부적으로는 코팅 작업에서도 KOZ(Keep Out Zone)를 좁게 유지하고, 인접 부품으로 용제가 퍼지거나 흘러가지 않는 기능을 원하고 있다. 결국 초창기 디스펜싱 기능이 현재 코팅 현장에서도 요구되고 있으며, 용제의 특성에 맞는 최적의 코팅 솔루션 선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디스펜서 업체 한국지사 H사 관계자는 “최근 전장 업종에서는 용제 특성이 까다롭고 어려워진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난이도 있는 대응 솔루션이 필요해진다”면서 “점성, 특성 등을 파악하고 코팅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잘 알아야 한다. 포밍 개념으로 덮는 코팅을 원하는 곳은 많이 없다. 전기차 업종에서는 대부분 원하는 영역만 부분적으로 코팅하는 공정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는 설비가 각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